“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.” 어릴 때 어머니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. 일의 결과를 미리 재단하지 말고, 인생을 폭넓게 보라는 뜻이다. ‘지혜의 왕’ 솔로몬도 “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. 이것이 잘 될는지, 저것이 잘 될는지,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”고 했다.
구름이나 비, 씨앗의 원리는 오묘하다. 같은 씨앗도 싹을 틔우는 속도가 다르다. 비가 많이 와서 햇볕을 못 받으면 웃자라고 약하다. 늦더라도 햇빛과 양분을 제대로 받으면 잘 자라고 튼실하다. 파종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다. 밭고랑을 깊이 파되 밭이랑을 넓고 높게 돋워야 한다. 거기에서 될성부른 떡잎이 자란다.
사람은 어떤가. 두 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타이거 우즈는 ‘조기 영재’ 스타일이다. 타고난 재능에다 생후 7개월 때 골프채를 쥐여준 아버지의 열정이 더해졌다. 반면 ‘테니스 황제’ 로저 페더러는 다양한 운동을 폭넓게 접하고 뒤늦게 테니스로 진로를 결정했다. 어릴 때 스키 레슬링 수영 야구 핸드볼 탁구 배드민턴 등을 두루 섭렵한 다음에야 테니스를 택했다. 성공한 선수들은 의외로 페더러 스타일이 더 많다.
엡스타인은 조기 교육도 의미 있지만, 자기 적성과 관심을 폭넓게 탐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. 그는 “성공한 선수들은 1~15세 동안 자기 종목에 쏟은 시간이 의외로 적고 다른 운동을 다양하게 경험했다”며 그 시기를 ‘샘플링 기간’이라고 표현한다.
빈센트 반 고흐도 자기 화풍을 완성하기까지 숱한 직업을 전전했다. 미술상(商)과 보조교사, 서점 점원, 순회 전도사를 거쳐 32세가 돼서야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다. 곧 그것마저 그만두고 튜브로 물감을 짜서 바르는 등의 기법을 실험했다. 그의 전 생애가 최고의 화업을 이루기 위한 샘플링 기간이었던 셈이다.
그의 동료 폴 고갱 역시 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다 35세에 화가가 됐다. 평균수명 40대인 시절로서는 매우 늦은 시기였다. 고흐와 고갱의 오랜 탐색과 경험은 마침내 세계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놨다. 늦게나마 자기만의 지향점을 찾아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개척한 것이다.
‘발명왕’ 토머스 에디슨도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. 어릴 때 선생님에게 “뭘 배우기엔 너무 멍청하다”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는 한 번의 성공을 위해 1000번 이상의 시도를 거듭했다. 그는 훗날 “난 실패를 만 번 한 것이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만 번 발견했을 뿐”이라고 말했다.
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시 네 살이 넘어서야 말을 시작한 늦깎이였다. 청년 시절에는 취리히 폴리테크닉대의 조수 선발에도 떨어졌다. 이런 험로를 오래 거친 덕분에 노벨 물리학상의 영예를 안았다.
첨단기술이 발달하면서 지식의 반감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. 인공지능(AI)과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. 이제 우리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 걸까. 앞으론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영역을 입체적으로 연결하고 그 접점에서 시너지 효과를 올리면서 남다른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.
‘다빈치 네트워크’(잠재력 발휘 글로벌 운동)의 창립자 와카스 아메드는 이 같은 융합인재를 ‘폴리매스(Polymath)’라고 부른다.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총체적인 사고와 방법론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라는 의미다.
사람마다 발전 속도가 다르다. 그러니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자. 이르거나 늦거나 간에 내 능력을 키워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.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, 그 비가 언제 내릴지 알 수 없지만 빗물은 늘 경험 많은 농부의 밭을 먼저 적신다.
조금 늦으면 또 어떤가. 그동안의 실패를 밑천 삼아 다시 시작하면 된다. 코로나 사태로 폐업까지 내몰렸다가 재기에 나서는 자영업자가 많다.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. 이들에겐 더 큰 밭과 단비가 필요하다. 자연의 섭리(攝理)에는 ‘한 손(手)’으로 ‘세 귀(耳)’를 모아 듣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. 그 내밀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겐 “비가 가득하면 비로소 땅에 쏟아지리라”는 솔로몬의 잠언도 더 깊게 들릴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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